[서평]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I 김영하

책이 김기덕 감독의 영화와 닮았다. 날 선듯, 가학적이고, 또 기괴하면서, 불편한 느낌을 한껏 받는다.
특히 여성에 대한 불편한 묘사가 닮았다. 그래서 김기덕 영화를 보듯 내내 불편한 심정으로, 그러나 빠른 스토리 전개에 숨가쁘게 책장이 넘어간다.

96년 쓰여진 이 책은 인간이 스스로를 파괴할 권리, 즉 '자살(自殺)'에 대한 이야기다. 10년이나 더 묵은 쾌쾌한 스토리일거라 생각했던 것은 첫 장부터 빗나간다. 앞서 말했지만, 매우 불편한 심정으로. 96년을 되돌아 생각해 보자. 나는 어릴 때라 잘은 모르겠지만, 분명 IMF 경제위기의 그림자가 사회 전반에 짙게 깔려 있었을게다. 어쩌면 제 2의 IMF라 불리는 요즘도 그런 분위기와 비슷할지 모르겠다. 지난 금요일에 VJ특공대를 보자니 요즘 자살률이 최고치라고 한다. 96년엔 세기말이라 해서 퇴폐적이고 음울한 기운이 퍼져있는 시기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도 '자살'이라던가 '자살도우미' 라는 소재를 전면에 내세운 이 소설은 2008년에 봐도 놀라울 따름이다. 모두가 다 아는 것이지만 아는체 하지 않는 어떤 금기같은 것이 바로 자살이 아닐까.

자살이 인간의 권리가 될 수 있을까? 기독교의 영향인지 우리는 자살을 하나의 '죄'라고 생각하고 있다. 인간의 목숨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소중한 생명이란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생과 사의 권리가 그 스스로에게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책의 주인공은 더이상 살고 싶은, 살아 있을 이유가 없는 자들을 자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안내자와 같은 일을 한다. 자살도 죄인데, 자살을 돕는 이 사람은 살인자라고도 할 수 있겠다. 정말 이들은 죄를 짓고 있는 것일까?

가끔 뉴스에서 보는 장면. 자살 카페라던가 카페 회원들이 단체로 자살여행을 떠난다던가 하는 것 말이다. 어른들은 어쩌다 세상이 이렇게 됐을까 하며 쯧쯧쯧 혀를 차신다. 나 역시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뉴스를 접하면 어딘지 섬뜩하고 불쾌한 기분이 든다. 그런데 이런 사회현상을 다소 비튼 B급 영화 '무도리'는 어떤 맥락에서 살펴봐야할까. '자살'은 사실 나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이상한 나라의 얘기가 아니다. 매일은 아니어도 가끔씩은 실제로 알던 사람들이 갑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듣기도 한다. 그것보다는 자주 누군가가 죽었다는 얘기도 듣는다. 죽음의 그림자는 사실 우리들의 삶 만큼이나 아주 가깝게 존재한다. 다만 우리가 애써 외면할 뿐이다.

죽음을 다룬 이 책을 읽고 반대로 삶에 대해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왜 죽지 말아야 할까, 란 질문에서 그렇다면 왜 살아야 할까, 란 질문으로 점차 생각이 옮겨간다. 아주 가끔씩은 너무 힘들어 죽고 싶단 생각을 한 적도 있었겠지만 그보단 더 많이, 더 자주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산다. '잘' 이란 것이 내포하는 의미는 나이를 먹으면서 조금씩 달라졌지만 본질적인 것은 그대로이다. 나는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지만, 그 날까지 '잘' '살기를' 기도한다.

다만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듯이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에게도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죽을 용기가 있으면 그 힘으로 열심히 살라는 말도 있지만, 그 선택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어떻게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있지 않을까. 떠난 자는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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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s://commsolution.tistory.com BlogIcon 소통이 2008.04.12 22:46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우리가 이 세상에 던져진 건 자유의지로 온 것이 아니기에, 최소한 떠나는 것은 본인에게 그 결정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죽음 이후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가거나, 나약한 사람으로 포지셔닝시키는 것은 그 사람을 두 번 죽이는 오만이라고 생각하구요.

    하지만, 어느 시인의 말처럼 저도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었다고 말하고 싶네요. 또한 '잘'산다는게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 Favicon of https://allycho.tistory.com BlogIcon 2008.04.13 02:02 신고 수정/삭제

      '잘' 살아보아요 대리님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