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합니다] 지식의 깊이와 트렌드의 가치

업이 업인지라 신문이나 미디어를 참 많이 보기도 하지만, '좋아한다'라고까지 할만한 매체는 별로 없는게 사실이다. 무엇이든 일로 하면 재미없긴 마찬가지 아닌가. 모든 기업들이 클라이언트나 혹은 경쟁사로 보이고, 위기가 터지면 저건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위기관리를 고민하려니 가끔은 아무 생각없이 멍청하게 기사를 읽고 있을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하고, 그래서 자발적으로 추천까지 할만한 지면이 있다니 나로서도 참 신기하다.

내가 좋아하는 지면은 조선일보 주말섹션인
Weekly Biz 이다.
조선일보에는 주말섹션으로 Why? 라는 지면과 Weekly Biz 두 가지가 발행된다. 둘 다 즐겨읽긴 하는데, 항상 두,세번 읽다가 결국 싸들고 집에 가는 길에 또 읽어가며 곰곰히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Weekly Biz이다.
왜 Why? 보다 Weekly Biz를 더 좋아하는지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 보니, 마케팅이나 커뮤니케이션 등 내가 하는 일들과 관련된 주제들이 심층적으로 다뤄지기 때문이었다.

지난 주에 나온 주제만 보아도 참 매력적이다. 다양한 주제들 중 내가 흥미롭게 읽은 주제만 소개한다.

Cover Story - '지식'을 벗겨내야 뇌리에 착 붙는다 / '강력한 메시지 비법' 연구한 칩 히스 스탠퍼드대 교수 인터뷰
Biz Strategy - '인터넷 여론' 파도 이렇게 대처하라
정동일교수의 리더십 이야기 - 당신 회사의 직원들은 주인의식이 얼마나 있습니까
BRICs - 3억명의 '추격자' 中 네티즌... 사진 한장이면 당신도 찾아낸다

<스틱>의 저자인 칩 히스 인터뷰부터 눈길을 사로잡더니, 블로고스피어에서의 기업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제시하는 기사 등 관심을 가질만한 컨텐츠로 가득차 있다.

나는 Weekly Biz야 말로 신문사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차별화 요소라고 생각한다. 깊이가 있으면서도, 현재의 트렌드를 결코 지나치지 않는 날카로운 눈썰미가 있다. 나와 같은 젊은 층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가벼움과 무거움을 동시에 가졌다. 사실 나는 조선일보 신문을 받으면 앞에 지면은 안보고 경제면과 주말섹션 2가지만 쏙 빼서 보곤한다 ^^;; (앞의 지면은 거의 차별화가 되지 않는다;;)

좋은 품질의 컨텐츠는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그리고 그들은 스스로 그 사랑을 전파한다. 알수록 놀라운 스스로 마케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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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 중독

CK 오고 첨으로 휴가를 냈다. 평소에 하고 싶었던 거 다- 해야지 했는데 계획의 반의 반도 다 못해서 좀 아쉬웠다.
계획을 다 못지킨 이유는, 바로 <클림트전> 때문이다.
원래 2-3시간 정도 관람하려고 했는데_ 결국 5시간 동안 보고왔다.
다리가 안아팠음 더 봤을지도 모르는데... 다리도 너무 아프고 오후가 되니까 사람들이 너무 많아져 줄 서서 봐야하는 상황이 벌어져 나왔다.
전시회 다녀와서 오늘까지 계속 클림트 중독에 걸린 것 같다.
클림트를 원래 좋아하긴 했지만, 클림트의 작품을 실제로 1m 앞에서 보고나니 새로운 흥분과 열정이 느껴져 그야말로 중독 증세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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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디트 I> 을 주제로 만든 클림트전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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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 쬐끔 비싸다. 클림트 클럽에서 할인행사를 한다는데, 또 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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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휴가라고 꽃치마 입었다가 그대로 얼었다. 너무 추웠다. ㅠㅠ


아무 생각없이 갔는데 운 좋게도 도슨스투어 타임이 맞아 설명을 들으며 한 바퀴를 먼저 돌았다.
클림트의 작품, 작품 배경, 그의 생애, 사랑과 인생을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평일인데도 사람이 구름떼처럼 많아 잘 들리지 않고, 작품도 잘 안보일 때도 있었지만.. 도슨스 투어는 한 번씩 참여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아래는 이번 전시회에 있는 작품들 일부. 전시회 관람 후 나오면 하단 그림들로 포토존과 액자들이 꾸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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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프리즈>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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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머성 공원의 산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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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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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터제 호수의 리츨베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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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엣_을 그린 스케치>



그리고 내 맘대로 뽑은 <클림트전> Best 5!!!

1. 유디트 I

이름값 한다는 말을 왜 하는지 알겠다. 유디트 앞에서 거의 30분 이상을 서 있었다.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앉았다, 일어섰다 하면서. 책에서 워낙 많이 봤던 작품이라 사실 그 정도 감동이 올 줄은 몰랐는데 정말 소름끼칠 정도로 완벽했다. 특히 액자까지 신경쓴 섬세하고 완벽한 클림트의 모습이 떠올라 감동이 더했다.
이번 클림트 한국전시에서 가장 대표적인 클림트 작품이기도 하고, 클림트의 전 작품들을 통틀어서도 손가락에 꼽을 만큼 유명하기도 하다. 크기는 생각했던 것처럼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보는 사람을 그대로 흡수시켜버리는 마력을 가졌다. 유디트의 반쯤 감긴 눈이 실제로 보니 가운데에 영롱하게 빛이 들어있다는 걸 알았다. 책으로 봐서는 절대 알 수 없는 느낌이다. 아아, 아무리 말로 설명할래도 영 신통치가 않다. 그냥 가서 볼 것. 그러면 느낌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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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베토벤 프리즈

베토벤 프리즈 관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데 그 규모와 색채, 다양한 장식들로 그대로 압도되고 만다. 클림트 특유의 부유하는 여성 이미지와 <Kiss>를 연상시키는 연인들의 포옹하는 모습이 낯익은 인상이다. 그런데 두 번째 섹션 <적의 무리들>은 낯익은 듯 하면서도 굉장히 흥미로웠다.
머리는 고릴라인데, 몸은 뱀의 형상을 한 괴물(타이푼)을 중심으로 질병, 광기, 죽음을 상징하는 세 고르곤이 왼쪽에 있고, 오른쪽으론 갈망, 음탕, 무절제를 형상하는 여인들이 나타난다. 물론 모두 여자들이다. 클림트에게 있어 여성은 구원자 혹은 치명적인 팜므파탈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자세히 보면 하나 하나 모두 섬세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이또한 감동이다. <다나에>와 닮은 오른쪽 빨간 머리 여자의 표정은 정말 유혹적이다. 그 중에서도 고릴라의 눈동자가 가장 압권이다. 실제로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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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캄머성 공원의 산책로

클림트와 풍경화는 잘 연상이 안되지만 이번 전시회에서는 풍경화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나 역시 클림트=여자=에로티시즘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 전시를 통해 클림트에 대해 더 다양한 관점을 갖게 됐다. 그 중에서도 <캄머성 공원의 산책로>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일단 화폭이 굉장히 큰데다 그 크기를 가득 채운 짙은 녹음에 입 벌리고 쳐다보게 된다. 전시장이 그림 보호를 위해 굉장히 어둡게 되어 있어서 그 색채를 제대로 느끼기가 어려워 아쉽다는 관계자의 말처럼, 그림의 녹음을 정확히는 느끼지 못했다 하더라고 그 색감만은 느낌이 제대로 온다. 클림트는 평생 정신병과 죽음에 관한 공포에 시달렸다고 하는데 화폭이 빈 곳 없이 색깔들로 가득찬 이유는 이런 공포감이 드러나는 케이스로 알려져 있다. 그림의 약간 오른쪽에서 그린 것으로 보이는 그림을 가까이에서 들여다 보면 한 곳, 한 곳이 한 번의 붓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굉장히 다양한 색깔이 수십번 덧칠되어 있는데 그 자체가 클림트의 완벽주의를 보여주는 것인데다 어느 것 하나 잘못 선택된 색이 없을 정도로 굉장하다. 나도 그림을 그려보고 싶어질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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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마리 브로이니크 초상

여자를 가장 잘 알고, 여자 그림을 가장 잘 그리는 것으로 평가받는 클림트. 왜 그가 여자들에게 인기있는 화가였는지를 너무나 잘 알 수 있었던 작품이다. 사진으로는 도저히 그 느낌을 알 수가 없을 것이다. 클림트의 섬세함이 작품에 그대로 드러나는데, 그녀의 목걸이, 팔찌가 정말 압권이다. 너무나 디테일해서 실사 같아 보인다. 그냥 좀 예쁘게 보이는 평범한 그림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들여다보고는 닭살이 확~ 돋았다. 그녀의 눈빛, 얼굴 빛, 섬세한 검은 드레스 주름, 그 외 배경들. 하나 하나 완벽하게 고민하고 그렸다는 걸 알 수 있다. 클림트가 현존했다면 얼마가 됐든 그에게 초상화를 부탁했을 여자들이 정말 많을 것이다. 클림트가 황금을 이용한 기법이나 파격적인 에로티시즘으로 유명세를 치렀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클림트의 초상화들을 실제로 보고 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정말로 노력파, 완벽주의자였던... 실력있는 천재 화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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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아기

클림트스럽지 않은 그림. 클림트가 죽기 1년 전에 그렸다는 이 작품은 클림트스럽지 않게 3-4일만에 완성됐다고 한다. 클림트는 완벽주의자라 그림 한 개를 일 년 정도 시간을 두고 그렸고, 그래서 미완성인 작품들이 많다고 알려져 있다. 이 그림은 그 답지 않게 여러 번 채색한 느낌이 없고, 색감도 그렇고, 구도라던가 여러가지 면에서 기존의 클림트 작품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고 있다. 맨 위에 아기가 있는데 이 그림은 멀리서 볼 때 아기 모습이 가장 잘 보인다. 아래에 이불 같은 것들은 마치 잭슨 폴록 그림 같기도 한데 뭔가 정신 없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싶어 여러 각도에서 살펴봤는데 잘은 모르겠다.
사람들은 아기의 표정이 기존 클림트 그림에서 나타나는 아기들과 달리 평온한 모습을 보인다고 하는데 나에게는 오히려 좀 슬픈 모습으로 다가왔다. 요람에 실려 멀리 물에 띄워져 나에게서 멀어지는 모습 같았다. 클림트의 아들이 생후 2개월만에 죽었다는 기록과 사진을 봤는데, 그가 그린 아들의 초상과 굉장히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기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좀 아련해지는 느낌이 든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와는 달리 그 아기를 바라보는 클림트는 분명히 슬펐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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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국 전시에서는 못봤지만, 꼭 보고싶은 클림트 작품들.

1. 키스

물론, 키스다. 나는 내가 키스를 봤을 때 어떤 전율을 느낄지를 지금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떨린다. 꼭 빈에 가서 내 눈으로 보고올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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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다나에

클림트의 에로티시즘의 절정이라고 해야할까. 다나에의 표정이 굉장히 굉장히 굉장히 섬세하고 아름답다. 나는 클림트가 정말로 여자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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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여성의 세 시기

클림트스러운 그림이다. 행복하고 아름다운 성인 여성과 여자 아기의 모습 왼편으로 추레한 노년 여성의 모습이 겹쳐진다. 이 그림은 종종 노인의 모습을 잘라내고 행복한 두 시기의 여성 모습만을 따로 떼어내 액자로 많이 만드는 모습을 봤다. 클림트를 제대로 알려면, 그의 그림을 봐야한다. 죽음을 의미하는 노인을 떼어낸 그림은 더이상 클림트의 작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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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금붕어

클림트의 황금빛과 유혹적인 붉은 머릿결. 나 정말 이 그림 보고싶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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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아델레 블로흐-바우어 I

분명히 이 그림을 보고나면 나는 꼼짝도 못할거다. 빈에 가고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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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국 전시를 마지막으로 최소 100년간은 해외 전시가 없을 예정이라고 한다. 막판까지 일본과 전시를 두고 치열한 경쟁이 있었다고 한다. 그림은 그저 인쇄된 책으로만 보는 것으론 한계가 있는 것 같다. 명화는 실제로 봤을 때 그 떨림이 훨씬 더 깊고 굉장하다. 유디트 하나만 보더라도 이번 전시는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클림트가 진두지휘했던 빈 분리파의 작품들은 100년이 지난 지금 보더라도 너무나 아름답고 세련됐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그들이 주장했던 '토털 아트'의 개념이 오늘날 제대로 자리가 잡혀, 실생활 속에서 가구, 식기에서 필기구까지 클림트의 작품이 소재가 되는 모습을 보면 클림트가 참 좋아하겠다_는 생각도 해봤다.

아무래도 한 번 더 가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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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s://lucell.tistory.com BlogIcon 루셀리언 2009.02.24 16:37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저는 클림트의 '의학'이란 작품이 넘 보고 싶어요!
    음울하고 매혹적인 분위기가 참 멋지더라구요,
    그리고 이런 말씀 드려도 될지 ... 꽃분홍 구두가 탐이 나요!+_+

    • Favicon of https://allycho.tistory.com BlogIcon 2009.02.24 18:04 신고 수정/삭제

      하하하..감사합니다. ^-^

      저도 의학, 참 보고싶은데.. 타버렸다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책으로 흑백버전을 봤었는데, 특유의 음울함이 계속 머리에 떠올랐었어요
      음울하지 않으면 클림트가 아니지요, 음울한 아름다움이 중독되는 주요원인이기도 하구요^^;;
      클림트를 좋아하신다니 괜시리 반갑네요

  • Favicon of http://www.artistsong.net/tc/ARTISTSONG BlogIcon 송선생 2009.02.24 19:27 ADDR 수정/삭제 답글

    순간 꽃치마... 다리 사진도 작품인 줄 알았다는... 잘 보았습니다. :)

    • Favicon of https://allycho.tistory.com BlogIcon 2009.02.25 15:48 신고 수정/삭제

      그렇담 초현실주의 인가요? ㅋㅋ
      송선생님, 그 때 와인은 잘 마셨답니다 ㅋㅋ

  • Favicon of http://blog.naver.com/klimtinkorea BlogIcon Klimt In Korea 2009 2009.02.27 15:01 ADDR 수정/삭제 답글

    꽃치마를 보는 순간 클림트의 그림 중 메다 프리마베시의 소녀가 떠오르는건 왜일까요.
    클림트전을 5시간 이상씩 보셨다니 정말 클림트를 좋아하시나봐요.
    고맙습니다.

    • Favicon of https://allycho.tistory.com BlogIcon 2009.03.02 16:08 신고 수정/삭제

      앗, 제가 계속 홀릭하고 있던 클림트전 블로그 운영자님이시군요^^
      클림트전 저처럼 5시간씩 보는 사람 많던걸요.. 계속 마주치던 사람들이 많았어요. ㅎㅎ
      오후에 사람이 그렇게 많아지지만 않았어도 더 있었을지도 모르는데..그랬음 링겔 꽂고 나오게 됐을까요? ㅎㅎ

  • Favicon of http://blog.naver.com/limit189 BlogIcon 최수영 2009.03.01 14:01 ADDR 수정/삭제 답글

    클림트 전 다녀오셨군요, 싹님의 꼼꼼하고 자세한 리뷰 덕에 더 가고 싶어지네요, 저 역시 클림트를 좋아하는 지라 이번 전시회에 빈에 있다는 키스 그림이 올까 생각했는데 예상대로 안왔군요 ㅜㅜ 저도 클림트 하면 에로시즘으로 연상되는 화가로 각인되어 있었는데 그의 풍경화도 볼 수 있다니 꼭 가야 겠어요.^^

    • Favicon of https://allycho.tistory.com BlogIcon 2009.03.02 16:09 신고 수정/삭제

      어디서 보니 키스는 오스트리아 국보라서 해외반출이 불가능한 작품이라고 하더라구요. 아무래도 저는 빈에 다녀와야겠어요..ㅎㅎ 수영님도 전시회 다녀오시면 포스팅 부탁해요! ㅎ

  • Favicon of http://disney30.egloos.com BlogIcon FERMATA 2009.03.11 10:36 ADDR 수정/삭제 답글

    클림트 전을 다녀오고 긴 여운에 블로그를 뒤적거리고 있답니다. ^^
    저도 가장 인상깊었던 작품 베스트 중에 마리 브로이니크 초상을 꼽았거든요.
    너무 반갑네요~! 섬세한 액세서리의 묘사를 보고 한참을 서 있었답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묘한 매력이 있어요. 저도 기회가 된다면 키스와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 초상을 보고 싶답니다. ^-^

    • Favicon of https://allycho.tistory.com BlogIcon 2009.03.11 19:24 신고 수정/삭제

      무슨 느낌인지 알 것 같아요, 저도 그 후유증이 참 오래가더군요..ㅎㅎ
      좋아하는 그림은 수없이 다시 보아도 계속 보고싶고, 떨리고 행복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 행복감을 주는 클림트에게는 항상 고마울 따름이죠^^
      꼭 빈에 가셔서 클림트 작품들 만나보시길 바랄게요.

NO KID_아이를 낳지 말아야 하는 40가지 이유 I 코린느 마이어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누군가의 행복을 바라는 것보다 허무한 건 없다고 한다.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에게 대신 기대를 걸어 행복감을 느끼기 때문이란다.
사실 상대방에게 기대를 걸고 잘해주면서 행복을 느끼게 되면, 언젠가 상대방은 그 은혜를 갚아야 하는 의무가 생기게 된다.
결국 다른 사람의 행복을 필사적으로 원하는 건 허무한 일이다.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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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네모의 꿈에 참석했더니, 반갑다고 기훈이가 장미꽃 한 송일 내민다.
역시, 너무 좋은 사람들.

오늘 읽은 책은, 아이와 육아, 여자와 가사노동이 주된 내용이었지만, 토론을 하는 우리들이 모두 싱글인지라 초점은 결국 결혼, 이상형, 앞으로 살고 싶은 삶 등으로 맞춰졌다.

앞으로 어떤 사람을 만나, 어떤 삶을 살고, 어떤 결혼 생활을 하고 싶냐고 나에게 묻는 아이들에게 나는,
"재미있게 살고싶다"고 대답했다.
나는 어떻게든, 어디서든, 있는 힘을 다해 재.미.있.게. 살고 말테다.

그 삶에 아이는 있을까, 없을까.
코린느 마이어가 말하는 40가지 이유 외에도 한국에서라면, 이라며 60가지 정도의 이유를 덧붙여 100가지쯤 댈 수도 있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낳아야 하는 이유가 단 한 가지라 할지라도, 그 100가지 이유를 넘어서는 하나의 이유가 될 수도 있을거란 생각이 든다.
다만 결혼하면 으레 묻는 "아직 아이는 없고?"란 질문은 삼가자.
지난 금요일에 또또 무의식적으로 물어보는 내 자신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제발 그 오지랖 좀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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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론-행복한 인생을 위하여 I 쇼펜하우어

요즘 행복에 관한 에세이집들이 많이 나와있다. 책 제목만 봐도 대략 내용을 짐작할 수 있는 그것들의 주요한 테마는 긍정적으로 살기, 타인을 이해하기,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뭐 그런 것들이다.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행복한 인생론은 조금 다르다. 자기 자신의 높은 인격과 참된 행복을 위해 타인과 어울리거나 너무 믿지 말고 자신만의 고독속에서 살라고 말한다. 이렇게 이기적일 수가! 라고 말할 정도로 속물스러워보여 인상 찌푸리다가도, 어쩌면 그것이 진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조금은 다른, 그만의 시각이 좋다. 그렇지만, 의지가 약할 때 읽으면 조금 힘들어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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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행복을 자신 속에서 발견해내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며,
다른 곳에서 발견해내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 샹포르

#. 인간의 행복한 모습, 아니 인간의 모든 생활방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인간 자신 속에 존재하는 것,
인간 자신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라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마음의 유쾌함과 불쾌함이 직접적으로 깃들어 있다.
왜냐하면 마음의 유쾌함과 불쾌함은 어쨌든 인간이 느끼고, 욕망하고, 생각하는 작용들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서 외부에 있는 모든 것들은 누가 뭐래도 간접적으로 마음의 유쾌함이나 불쾌함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에 지나지 않는다.

#. 인간은 각자 피부를 두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의식 속에 갇혀서 직접적으로는 자신의 의식 속에서만 살아가고 있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외부로부터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 하더라도 그다지 커다란 구원을 얻지 못하는 법이다.

#. 가련한 희극 배우이다. 고뇌와 괴로움을 가진 희극배우이다. 인생 역시 이와 같다. 지위나 부의 차별이 각자에게 서로 다른 역할을 연기하도록 하고 있기는 하지만 결코 이 역할에 비례해서 행복이나 즐거움의 내면적인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며, 이러한 경우에도 한 껍질 벗기고 나면 모두가 똑같이 가엾이 여겨야 할 어리석은 자인 것이다. 괴로움고뇌를 가진 어리석은 자이다.

#. 사람의 내면의 모습과 사람이 갖추고 있는 것, 즉 인격과 인격의 가치가 사람의 행복과 안녕의 유일하고도 직접적인 요인이다. 그 이외의 것들은 모두 간접적인 것이다.

#. 온갖 재산중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우리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마음의 명랑함이다. 왜냐하면 이 장점은 다른 그 무엇을 기다릴 것까지도 없이 이 장점 자체에 의해서 보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명랑한 사람에게는 언제나 명랑하게 지낼 수 있는 원인이 있다. 그 원인이란, 다름 아닌 그가 명랑하다는 사실이다.

#. 언제 어디서나, 믿을 수 있는 것은 너 하나이다.
네 행복은 네가 쌓은 것이다, 네가 발견하는 것이다. - 올리버 골드스미스

#.우리들의 행복은 그 대부분이 마음의 안정과 만족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이 행복에 기여하는 길로는 이 명예욕이라는 동기를 이성적으로 봐서 타당하다고 수긍할 수 있을 정도로까지 억제하여 끌어내리는 일, 즉 끊임없이 혹독하게 책망하는 가시를 우리들의 몸에서 뽑아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 허영심과 자긍심의 구별은, 자긍심은 어떠한 점에서 자신이 압도적인 가치를 가진 것에 대해서 이미 부동의 것이 되었다는 확신임에 반해서 허영심은 이러한 확신을 타인의 마음속에 불러일으키려고 하는 소망이며, 대부분의 경우 타인의 마음속에 확신을 불러일으키면 그 결과 자기 스스로도 타인의 확신을 자신의 확신으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은밀한 기대가 수반된다는 점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다.

#. 현재야말로 현실적으로 충실한 시간이며 우리들의 현실생활은 오직 현재 속에만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명랑하게 현재를 받아들여야 한다...과거에 품었던 희망에 대한 좌절이나 미래에 대한 우려 때문에 씁쓸한 표정으로 이 한때를 숨막히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 즐거울 때는 그것을 깨닫지 못한 채로 보내다가 좋지 않은 때가 찾아와서야 비로소 옛날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마음 편하고 명랑할 때는 얼마든지 있었지만 제대로 맛보지도 즐거움을 얻지도 못한 채 불쾌한 얼굴로 지내버리다가 나중에 괴로운 때가 찾아왔을 때 그것을 동경하며 덧없이 긴 탄식만을 내뱉을 뿐이다.

#. 자기 자신의 본연의 모습대로 살아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홀로 있을 때뿐이다. 따라서 고독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자류를 사랑하지 않는 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홀로 있을 때만이 자유롭기 때문이다.

#. 원래 인간은 누구나 가장 완전하게 융화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을 상대할 때일 뿐이다. 친구와도, 연인과도 완전히 융화할 수는 없다. 개성이나 기분의 차이 때문에 반드시 다소나마 부조화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음의 근본적인 참된 평화와 기분의 완전한 평정, 즉 건강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이 지상의 재산은 고독 속에서만 추구할 수 있으며 철저한 은둔을 통해서만 지속적인 마음으로 가지고 있을 수가 있다.

#. 좋든 싫든, 사건, 행복, 불행에 관해서는 모든 점에 있어서 상상력에 제한을 가하는 것이 좋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먼저 공중누각을 쌓아올리지 않는 것이 좋다. 공중누각은 쌓아올림과 동시에 한숨과 함께 허물어버리지 않으면 안될 성질의 것으로 희생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 아침은 일반적으로 정신적인 일을 하기에도, 육체적인 일을 하기에도 그 어떤 일을 하기에도 적합한 시간이다. 하루 중 아침은 청춘시대에 해당하며 모든 것이 명랑하고 상쾌하며 경쾌하다. 의욕에 넘치는 기분으로 모든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다. 늦잠으로 아침시간을 단축시키거나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나 잡담으로 낭비하지 말고, 아침은 인생의 정수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이것을 신성시해야 할 것이다. 이에 반해서 밤은 하루 중의 만년에 해당한다. 밤이 되면 무기력하고 말이 많아지며 경솔해진다. 하루 하루가 조그만 일생인 것이다. 나날의 기상이 조그만 출생, 매일 아침의 상쾌한 시간이 조그만 청춘, 매일 저녁 침상에 누워 잠드는 것이 조그만 죽음인 것이다.

#. 추억은 암실 속의 볼록렌즈와도 같은 역할을 한다. 추억은 모든 것을 압축하고, 그 압축으로 인해서 실제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상을 만들어낸다.

#. 누구나 사물을 자신 이상으로 볼 수는 없다. 이것은, 누구나 타인을 봐도 동시에 자기 자신의 모습이고 한 모습밖에는 볼 수 없다는 의미이다. 자기 자신의 지식의 힘에 따라서 타인을 파악하고 이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사랑은 언제나 이기적이다. 타인의 정신,심정에 대해서 어려운 주문을 하지 않는다면 대부분은 사랑받게 될 것이다...이와 반대로 사람들의 존경심은 사랑과는 사정이 반대이다. 타인의 존경을 얻는다는 것은 타인의 의지에 반해서 가부를 묻지 않고 자신을 존경하도록 하는 것이다...사랑은 주관적, 존경은 객관적이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 우리들에게 도움이 되는가 하면, 그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사랑이다.

#. 이제 막 알게된 사람을 매우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대부분의 경우에 실망을 하게 되어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부끄러운 일을 당하거나 심지어는 손해를 보게 되기도 할 것이다.

#. 본성은 갈퀴로 베어내도 다시 돌아오는 법이다.

#. 사람은 자기 몸의 무게를 업고 있으면서도 타인의 몸을 움직이려고 할 때와는 달리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은 자신의 결점이나 악덕은 깨닫지 못하고 타인의 결점이나 악덕만을 깨닫는다.

#. 적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일은 우리 편에게도 말하지 말라. 자신의 비밀을 말하지 않는다면 비밀은 자신의 포로이다. 비밀을 말하면 내가 비밀의 포로가 된다.

#. 속임수에 의해서 빼앗긴 돈만큼 유리하게 사용한 돈도 없다. 그 돈으로 무엇보다도 지혜를 산 것이기 때문이다.

#. 사랑하지 않으면 미워하지도 않는다.

#. 자신의 생애를 되돌아보고 그 '미궁과도 같이 복잡한 경로'를 건너다보면 반드시 수많은 행운을 놓쳤으며, 수많은 불행을 스스로 불러들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럴 경우 자칫하면 너무나도 성급하게 자신을 책망하기 쉽다. 우리들의 생애는 결코 그저 우리들이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라 두 가지 요인, 즉 수많은 일과 우리 자신의 수많은 결의의 산물이며 이 두 가지가 끊임없이 교차하면서 서로에게 변화를 주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이 두 가지의 모든 면에 대해서 우리들의 시야는 언제나 너무 좁다. 즉, 우리들은 자신의 결의를 훨씬 전부터 예언할 수도 없으며, 일어날 일을 예견할 수는 더더욱 없는 것이다.

#. 인생은 장기와 같은 것이다. 우리들은 전반적인 구상을 한다. 하지만 이 구상은, 장기에서는 상대방이, 인생에서는 운명이 어떤 식으로 수를 쓸 것인가에 따라서 제약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경우 구상에는 대대적인 수정이 가해지므로 막상 실현과정이 되면 구상은 아주 미미한 특징을 가지고 있을 뿐인 것이 된다.

#. 시간의 작용과 사물의 덧없음을 언제나 잊지 말고, 현재의 일을 보고는 곧 그 반대를 상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즉, 행복에 있어서는 불행을, 우정에 있어서는 적의를, 맑은 날에는 흐린 날을, 사랑에 있어서는 미움을, 신뢰를 하고 속마음을 털어놓을 때는 배신을 당해 후회하는 장면을 각각 선명하게 그려보고, 또한 그 반대의 경우에도 각각 반대의 경우를 떠올려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 인생은 틀림없이 그 자체가 투쟁이다. 우리들의 한 걸음 한 걸음에 공격이 가해진다.

#. 우리들의 생애에서 중요하고 중대한 일이나 인물이 등장할 때는 틀림없이 요란하게 등장할 것이라고 젊은 시절에는 생각하지만, 노년이 되어 회고를 해보면 그러한 일이나 인물은 모두 가만히 뒷문을 통해서 거의 느끼지도 못할 정도로 살짝 들어왔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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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 I 강신주

#. 혜시가 장자에게 말했다. "자네의 말은 쓸모가 없네" 그러자 장자가 이야기했다 "쓸모없음(無用)을 알아야만 함께 '쓸모있음'(用)'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법이네. 땅은 정말로 넓고 큰 것이네. 그렇지만 지금 당장 사람이 쓸모를 느끼는 것은 단지 자신의 발이 닿고 있는 부분뿐이라네. 그렇다면 발이 닿는 부분만을 남겨두고 그 주변을 황천, 저 깊은 곳까지 파서 없앤다면, 그래도 이 발이 닿고 있는 부분이 쓸모가 있겠는가?" - 장자, <외물>

#. 동일한 규칙을 공유한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와 토론이란 진정한 의미에서의 대화토론일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의 대화와 토론이 아무리 진지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단지 공동체의 규칙을 집단적으로 재확인하는 차원에 머물 수밖에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 중재가 가능한 논쟁은 진정한 논쟁이 아니며, 진정한 논쟁은 중재가 불가능한 것이라는 역설.

#. 서로 화해될 수 없는 두 가지 원리 - 비트겐슈타인

#. 타자와의 관계는 공동체와의 전원적이고 조화로운 관계가 아니며, 우리가 타자의 입장에서 봄으로써 우리 자신이 그와 유사하다고 인식하도록 만드는 공감도 전혀 아니다. 타자와의 관계는 우리에 대해 외재적인 것이다. 타자와의 관계는 하나의 신비와의 관계이다. 그것이 바로 그의 외재성이며 혹은 그의 타자성이다. - 레비나스, <시간과 타자>

#. 마음으로 하여금 타자를 자신의 수레로 삼아 그것과 노닐 수 있도록 하고, '멈추려 해도 멈출 수 없는 것'(不得已)'에 의존해 중(中)을 기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다. -장자, <인간세>

#. 너는 들어보지 못했느냐? 옛날 바닷새가 노나라 서울 밖에 날아와 앉았다. 노나라 임금은 이 새를 친히 종묘 안으로 데리고 와 술을 권하고, 아름다운 궁궐의 음악을 연주해 주고, 소와 돼지, 양을 잡아 대접하였다. 그러나 새는 어리둥절해 하고 슬퍼하기만 할 뿐, 고기 한 점 먹지 않고 술도 한 잔 마시지 않은 채 사흘 만에 결국 죽어 버리고 말았다. 이것은 사람을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기른 것이지, 새를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기르지 않은 것이다. - 장자, <지락>

#. ..."나는 옛 삶(故)에서 시작하였고 지금의 삶(性)에서 자라났으며 '운명'(命)에서 완성하였습니다. 물이 소용돌이쳐서 빨아들이면 저도 같이 들어가고, 물이 나를 물속에서 밀어내면 저도 같이 그 물길을 따라 나옵니다. 물의 도를 따라서 그것을 사사롭게 여기지 않습니다. 이것이 제가 물을 건너는 방법입니다.
"제가 육지에서 태어나서 육지에서 편안해진 것이 옛 삶이고, 제가 현재 물에서 자라서 물에 편안해진 것이 지금의 삶이며, 내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된 것이 바로 운명입니다." - 장자, <달생>

#. 꿈 속에서 잔치를 연 사람이 새벽에 울부짖으며 눈물을 흘리고, 꿈 속에서 울부짖으며 눈물을 흘리던 사람이 새벽에 (즐겁게) 사냥을 하러 나간다. 꿈을 꿀 때 우리는 자신이 꿈꾸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꿈꾸고 있으면서 꿈속에서 꾼 어떤 꿈을 해석하기도 한다. 우리는 깨어나서야 자신이 꿈을 꾸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단지 완전히 깨어날 때에만, 우리는 이것이 완전한 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 장자, <제물론>

#. '저것'(彼)과 이것(是)이 자신의 짝을 잃은 상태를 '도의 지도리'(道樞)라고 부른다. 도의 지도리는 '원의 중심'(環中)을 얻어서 무한하게 타자와 감응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옳음(是)도 하나의 무한한 소통으로 정립되고, 그림(非)도 하나의 무한한 소통으로 정립된다. - 장자, <제물론>

#. 아이는 순진무구함이며 망각이고, 새로운 출발, 놀이, 스스로 도는 수레바퀴, 최초의 움직임이며, 성스러운 긍정이 아니던가. 그렇다! 창조라는 유희를 위해선, 형제들이여, 성스러운 긍정이 필요하다. 이제 정신은 자신의 의지를 원하고, 세계를 상실했던 자는 이제 자신의 세계를 되찾는다.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만물들과 관계할 때 송건은 '선입견으로부터 결별하는 것'(別宥)을 시작점으로 삼았고, 마음의 포용함을 말했으며, 이것을 "마음의 작용"이라고 불렀다. 그는 서로 친숙하고 다같이 기뻐함으로써 온세상을 조화시키려 하였으며, 인간의 본질적인 욕망들'을 설정해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겼다 - 장자, <천하>

#. 우리는 마찰이 없는 미끄러운 얼음판으로 잘못 들어섰던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 조건은 이상적인 것이었지만 그로 말미암아 우리는 걸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마찰이 필요하다. 거친 땅으로 되돌아가자! - 비트겐슈타인, <철학적 탐구>

#. '부득이한 일에만 깃들어라'라는 것은 타자성에 몸을 맡기라는 말이다. 여기서 부득이라는 개념이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글자 그대로 내가 멈출(已) 수 없는 것" 즉, 내가 어떤 노력을 해도 바꿀 수 없는 타자성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환공이 회당의 높은 곳에서 책을 읽고 있었고, 윤편은 회장 낮은 곳에서 수레를 깎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나무망치와 끌을 밀쳐 두고 올라와서 환공에게 물었다. "공께서는 지금 무슨 말들을 읽고 계십니까?" 환공이 "성인의 말이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윤편이 "그 성인은 살아 있습니까?" 라고 묻자 환공은 "그는 죽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윤편은 말했다. "그렇다면 공께서 지금 읽고 있는 것은 옛 사람들의 찌꺼기가 아닙니까?" 그러자 환공이 말했다. "수레바퀴나 깎는 장인인 주제에 네가 지금 내가 읽고 있는 것을 논의하려고 하는가! 만일 네가 자신의 행위를 변명할 수 있다면 괜찮겠지만,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너는 죽음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자 윤편은 말했다. "저는 그것을 제 자신의 일에 근거해서 본 것입니다. 수레바퀴를 깎을 때 엉성하게 작업하면 헐렁해져 견고하게 되지 않고, 꼭 끼게 깎으면 빠듯해서 서로 들어맞지 않습니다. 엉성하지도 않고 꼭 끼지도 않게 작업하려면 저는 그것을 손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대응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입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 제가 저의 아들에게 전달할 수 없고 저의 아들도 또한 저에게서 배울 수 없는 기술이 있습니다. 이것이 나이 70이 되도록 제가 직접 바퀴를 깎고 있는 이야입니다. 옛 사람은 자신이 전할 수 없는 것과 함께 이미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공께서는 지금 옛 사람들의 찌꺼기를 읽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 장자, <천도>

불안은 어디에서 오는가

요즘 알랭 드 보통의 책 <불안>을 읽고 있다. (사실 소설책인 줄 알고 샀는데... 아니다)
그래서인지 '불안함'에 대해서 주말 동안 많은 고민을 해봤다. 내가 요즘에 정신을 못차리고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는 이유도 이 '불안'이란 감정과 다르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알랭 드 보통이 말하길, 불안함의 근본적인 이유는 '사랑' 때문이란다. 남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를 채우기 위해 인간은 끊임없이 불안해 한다. 아직 다 읽어보진 않았지만... 맞는 말인 거 같다.

어제 네모의 꿈에서 사람들과 이런 '불안'에 대해서 얘길 하다가, 모임엔 참석하지 못했지만 멤버 중 한 명인 30대에 접어든 언니가 이런 얘길 했다는걸 들었다.

"20대땐 내 자신이 너무 불안했다. 그런데 그 불안함의 원인은 내가 해보지도 않았던 일, 그리고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 내게 닥칠까봐 두려워하는데 있었다. 30대가 되고나니 그런 불안함이 걷혔다"

실체없는 '불안'이란 존재가 나 자신을 휘청 휘청 흔들고 있다. 조금 더 나이가 들면 이 불안함이 정말 사라지게 될까. 10%씩 늘 모자란 내가 꽉 채워지고 만족하고 행복해져 더이상 '불안'하지 않게 되려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오늘 또 숙제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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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www.jameschung.kr BlogIcon 정용민 2008.04.28 11:51 ADDR 수정/삭제 답글

    숙제를 잘하는 학생이 훌륭한 학생입니다. 숙제 잘 해결하세요. :)

    • Favicon of https://allycho.tistory.com BlogIcon 2008.04.28 16:06 신고 수정/삭제

      네..자꾸 쌓여가는 숙제.. 회사 숙제부터 좀 해결해야 할텐데 말이죠..;;;;;;

  • Favicon of http://montparnasse.tistory.com BlogIcon 뷰티풀몬스터 2008.05.02 23:57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Crisis Management Simulation Sketch~트랙백 달아놓으신 걸 보고 들어왔어요^^알랭드보통의<불안>을 읽으셨네요 저도 알랭드보통 글을 좋아해서 읽었었는데요, 저는 불안이 무지에서 오는 거 같아요, 결과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오는..그래서 최대한 원하는 결과대로 살아볼려고 노력하는 거겠죠..;;^^

    • Favicon of https://allycho.tistory.com BlogIcon 2008.05.06 08:46 신고 수정/삭제

      네, 알랭드보통이 불안에 대해서 여러가지 원인을 제시했더라구요. 제가 첫부분만 보고 쓴 글이였어요. 근데 원래 인생은 잘 모르는거잖아요, 무지때문에 불안이 생기는 거라면.. 평생 불안해하며 살아야할지도 모르겠네요;; 방문, 그리고 댓글 감사합니다 :)

[서평]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I 김영하

책이 김기덕 감독의 영화와 닮았다. 날 선듯, 가학적이고, 또 기괴하면서, 불편한 느낌을 한껏 받는다.
특히 여성에 대한 불편한 묘사가 닮았다. 그래서 김기덕 영화를 보듯 내내 불편한 심정으로, 그러나 빠른 스토리 전개에 숨가쁘게 책장이 넘어간다.

96년 쓰여진 이 책은 인간이 스스로를 파괴할 권리, 즉 '자살(自殺)'에 대한 이야기다. 10년이나 더 묵은 쾌쾌한 스토리일거라 생각했던 것은 첫 장부터 빗나간다. 앞서 말했지만, 매우 불편한 심정으로. 96년을 되돌아 생각해 보자. 나는 어릴 때라 잘은 모르겠지만, 분명 IMF 경제위기의 그림자가 사회 전반에 짙게 깔려 있었을게다. 어쩌면 제 2의 IMF라 불리는 요즘도 그런 분위기와 비슷할지 모르겠다. 지난 금요일에 VJ특공대를 보자니 요즘 자살률이 최고치라고 한다. 96년엔 세기말이라 해서 퇴폐적이고 음울한 기운이 퍼져있는 시기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도 '자살'이라던가 '자살도우미' 라는 소재를 전면에 내세운 이 소설은 2008년에 봐도 놀라울 따름이다. 모두가 다 아는 것이지만 아는체 하지 않는 어떤 금기같은 것이 바로 자살이 아닐까.

자살이 인간의 권리가 될 수 있을까? 기독교의 영향인지 우리는 자살을 하나의 '죄'라고 생각하고 있다. 인간의 목숨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소중한 생명이란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생과 사의 권리가 그 스스로에게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책의 주인공은 더이상 살고 싶은, 살아 있을 이유가 없는 자들을 자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안내자와 같은 일을 한다. 자살도 죄인데, 자살을 돕는 이 사람은 살인자라고도 할 수 있겠다. 정말 이들은 죄를 짓고 있는 것일까?

가끔 뉴스에서 보는 장면. 자살 카페라던가 카페 회원들이 단체로 자살여행을 떠난다던가 하는 것 말이다. 어른들은 어쩌다 세상이 이렇게 됐을까 하며 쯧쯧쯧 혀를 차신다. 나 역시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뉴스를 접하면 어딘지 섬뜩하고 불쾌한 기분이 든다. 그런데 이런 사회현상을 다소 비튼 B급 영화 '무도리'는 어떤 맥락에서 살펴봐야할까. '자살'은 사실 나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이상한 나라의 얘기가 아니다. 매일은 아니어도 가끔씩은 실제로 알던 사람들이 갑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듣기도 한다. 그것보다는 자주 누군가가 죽었다는 얘기도 듣는다. 죽음의 그림자는 사실 우리들의 삶 만큼이나 아주 가깝게 존재한다. 다만 우리가 애써 외면할 뿐이다.

죽음을 다룬 이 책을 읽고 반대로 삶에 대해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왜 죽지 말아야 할까, 란 질문에서 그렇다면 왜 살아야 할까, 란 질문으로 점차 생각이 옮겨간다. 아주 가끔씩은 너무 힘들어 죽고 싶단 생각을 한 적도 있었겠지만 그보단 더 많이, 더 자주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산다. '잘' 이란 것이 내포하는 의미는 나이를 먹으면서 조금씩 달라졌지만 본질적인 것은 그대로이다. 나는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지만, 그 날까지 '잘' '살기를' 기도한다.

다만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듯이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에게도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죽을 용기가 있으면 그 힘으로 열심히 살라는 말도 있지만, 그 선택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어떻게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있지 않을까. 떠난 자는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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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s://commsolution.tistory.com BlogIcon 소통이 2008.04.12 22:46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우리가 이 세상에 던져진 건 자유의지로 온 것이 아니기에, 최소한 떠나는 것은 본인에게 그 결정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죽음 이후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가거나, 나약한 사람으로 포지셔닝시키는 것은 그 사람을 두 번 죽이는 오만이라고 생각하구요.

    하지만, 어느 시인의 말처럼 저도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었다고 말하고 싶네요. 또한 '잘'산다는게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 Favicon of https://allycho.tistory.com BlogIcon 2008.04.13 02:02 신고 수정/삭제

      '잘' 살아보아요 대리님 ㅎ

[서평]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이름이 있다. 사실 이름이란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모모모'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이 이름은 그 사람에 대한 어떤 것도 설명해 줄 수가 없다. 가령 성별 정도는 알 수도 있겠다. 그리고 나이대 정도도 추정이 가능한 이름들도 있다. 그러나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이름만 가지고는 아무 것도 알 수가 없다.

이렇게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하던 낱말 뿐인 이름이 어느 날부턴가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될 때가 있다. 주제 사라마구의 신작인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은 이렇게 어느 날 문득 의미가 생겨버린 어떤 여자를 찾는 '주제'씨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설 속에서 유일하게 이름이 있는 주인공의 이름이 작가의 이름과 같다는 것 또한 책을 읽는 즐거움이 된다.

중앙등기소에서 평범한 직원으로 살아온 주제씨. 벌써 나이가 50이지만 아직도 말단 직원인데다 어찌나 소심한 인물인지, 사실 이렇게 매력없는 주인공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등기소엔 서류가 넘쳐난다. 그 서류들은 이분법에 의해 두 공간으로 나뉜다. 죽은 자들의 서류와 산 자들의 서류로. 그 서류 속엔 이름, 성별, 생년월일, 그리고 사망일 까지만 적혀있다. 그래서 그 서류들은 한낱 서류에 불과하고, 산 자의 것이든 죽은 자의 것이든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다.

소심한 주제씨의 은밀한 사생활이 있었으니, 바로 밤중에 몰래 등기소에 들어가 사회 유명인사들의 서류를 훔쳐다 베껴놓는 것이었다. 너무나 '존재감'이 없는 인물이었으니 '존재감' 있는 사람들의 삶을 훔쳐보고 싶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다 문득 아무 인연도 없던 평범한 한 여자의 서류가 그의 손에 들어오고, 그는 갑작스레 그녀를 찾고싶고, 알고 싶은 욕망에 휩싸인다. 평범하고 소심하고 완벽하게 '사회화 되어있는' 주제씨는 일탈을 거듭한다. 밤중에 학교 창문을 부스고 몰래 들어간다거나, 등기소장 직인을 찍은 날조된 증명서를 들고 그녀의 주변 사람들을 탐문하기도 한다. 그의 거짓말은 너무나 서툴러서 여러 사람들에게 들키기도 하지만 어쩐지 그들을 도와주고 만다.

그가 마침내 그녀를 찾아낸 곳은 어디였을까. 그녀는 수많은 사람들이 묻혀있는 공동묘지 안에 누워있다. 그는 그녀의 무덤을 확신하지만, 양치기가 무덤 번호판(이름을 대신해)을 뒤바꿔 놓는 통에 사람들은 누군지도 모를 사람의 묘비를 앞에 두고 통곡하기도 할 것이다. 이렇게 이름이나 숫자는 아무런 무게도, 아무런 존재감도 없는 의미 없는 글자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란 시가 계속 떠올랐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나는 내 이름에 어떤 의미와 가치, 그리고 존재감을 불어넣고 있을까. 내가 어떤 존재인지, 수백 만의 사람들 중에서 나라는 단 하나의 존재를 찾고, 알아줄 주제와 같은 사람이 있을지. 내가 살아 숨쉬건, 혹은 영영 잠들어 있건간에 상관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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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I 친절한 복희씨 I 박완서

2007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올해 마지막으로 읽는 책일런지도 모르겠다.
네모의 꿈이 올해 마지막 모임을 오늘 가졌다. 학생들이 많은지라 많이 빠져서 오늘 단촐히 셋이 모였다.
오늘 얘기한 책은 박완서 님의 신작인 '친절한 복희씨' 였다. 책 소개를 통해 노년의 눈으로 바라보는 단편 소설집이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다. 유명 작가분인데, 프로필을 보니 그 많은 작품 중 겨우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정도만 읽었다. 그러고보니 나는 정말 한국 소설을 별로 읽지 않는가 보다.

'친절한 복희씨'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두 작품을 읽고 나서 든 공통적인 느낌은 '쓸쓸하다'는 것이다. 박완서 님의 글은 참, 쓸쓸하다.
특히 친절한 복희씨는 대부분 40-50대, 혹은 그 나이대도 훌쩍 넘긴 노년의 주인공들이 1인칭 시점에서 풀어가는 이야기라서 공감할 듯, 잘 모르겠는 듯, 쓸쓸한 듯, 그러면서도 따뜻한 듯 그렇게 읽었다.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가 중년이라고 생각하고, 혹은 우리 엄마나 할머니가 됐다고 감정이입하고 읽었더니 너무나 쓸쓸해져서 견디기 어려운 기분이 됐다.

오늘 모임에서 문범오빠가 그렇게 물어봤었다. 중년의 내가 어떤 모습이었음 좋겠냐고. 당혹스러웠다. 나는 항상 나중에 어떤 일을 하고, 남편으로는 어떤 사람을 만났음 좋겠다고, 그리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모습은 겨우 5년 정도? 30대 초반 정도에 머물러 있었다. 나의 40-50대 모습? 혹은 그보다 더 나이 먹은 모습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인간은 참 어리석은 것 같다. 평생 이렇게 청춘인 줄 알고 인생을 허비하고 있다는 생각에 문득 서운하고 쓸쓸해 지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다.

그리고 나는 이런 얘기를 했다. 내가 지금은 어려서 잘 모르고 넘어갔던 많은 일들, 나이가 먹어서 찬찬히 나의 청춘을 되돌아 보면 '아, 내가 그 때 그런 행동을 했었구나. 참으로 부끄럽다.'라며 되돌아보며 하는 이야기들이 이 책 속의 주인공들의 마음일 것 같다고. 사람은 한 평생 살면서 궁극적으로 하는 일은 '자신을 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것. 내가 '친절한' 복희씨인지, '불친절한 복희씨'인지는 이렇게 젊을 때는 결코 알 수 없는 노릇이리라. 나이가 먹고, 내가 살아온 날이 길어지고, 생각이 깊어졌을 때, 그 때서야 비로소 조금쯤은 자신을 알 수 있지 않을까.

내가 40-50대가 됐을 때는 이 책 속의 주인공들과는 또 다른 생각과 추억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들의 삶은 퍽이나 쓸쓸할 수 밖에 없다. 전쟁 속에 가족과 애인을 잃고, 가난 때문에 원치 않는 결혼을 하고, 또 공부도 할 수 없었던 세대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문득 우리 엄마와 할머니께 권해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엄마와 할머니는 어떤 느낌으로 이 이야기들을 받아들이실까... 궁금해진다.

9개의 짧은 이야기들이 어느 것이 더 낫다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슷하면서도, 한결같이 반짝이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쓸쓸하지만, 근원적인 아름다움 같은 것. 이 책은 한국적인 정서와 많이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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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Ru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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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거스트 러쉬. 2007.


December 2, 2007

어제 네모의 꿈 식구들과 어거스트 러쉬를 함께 봤다. 내가 한 3주일 전부터 노래를 부르고 다녔던 영화.
며칠 전에 어떤 분이 "별로..."라고 쓴 포스트를 봐서 기대가 한풀 꺾이긴 했지만, 그래도 요즘 날씨와 내 기분과 너무 잘 어울릴 것 같단 생각에 사람들을 꼬셔서 같이 갔다 :)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았다. 좀 더 점수를 주자면 나한테는 아주 좋았다.
마지막 엔딩이 좀 더 섬세했더라면 하는 바램이 있지만... 더 디테일한 엔딩이 나왔음 또다른 실망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초반부터 괜시리 눈물이 나서 혼자 챙피해 하면서 봤다 :)
프레디 하이모어의 Listen. 이란 나레이션으로 영화가 시작되는데 그 한 대사가 이 영화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 같다.
아이의 귀에만 들리는 세상의 소리들, 그 소리들이 만나 울리는 하모니, 나도 그것을 함께 듣고 싶다.
나는 <원스>를 보지 못했는데, 영화도 좋지만 OST가 굉장히 좋다고 들었다.
<어거스트 러쉬>는 솔직히 OST가 그리 훌륭할 것 같지는 않다. 그렇지만 영화에서 듣는 음악은 굉장히 좋다.
특히 프레디 하이모어가 독특한 방식으로 기타를 치는 모습은 색다른 기쁨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미소를 짓게 만든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프레디에겐 역시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
가장 순수하고, 가장 영리한 아이의 눈을 가졌다.

영화의 큰 주제는 사랑, (프레디의 부모는 단 하루만에 사랑에 빠졌고, 11년 넘게 서로를 잊지 못한다)
또 가족 (주변 사람들이 모두 '죽었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한 번도 서로가 죽었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리고 음악 (아빠인 루이스는 밴드 보컬이자 기타리스트, 엄마는 첼리스트, 그리고 어거스트는 천재 음악가)
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영화에 재미를 더하는 한 가지 요소를 더 꼽자면, 나는 천재 아이의 탄생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천재 아이를 사랑한다. 항상 관심을 갖게 되는 주제이다.
오늘 아침 네이버에 뜬 송유근의 대학 자퇴 소식에 자연스럽게 눈길이 가는 것처럼.
늘 눈을 감고 세상이 만들어 내는 음악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아이, 그 아이가 음악 천재라는 것을 발견하고 그가 발전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기대감과 기쁨, 희열.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레퍼토리이지만, 항상 흥미로운 것은 왜일까. 내가 갖지 못한 지성에 대한 열등의식인가?
그들의 순수한 열정 (무엇 하나에 대해서는 천재이지만, 다른 것들엔 낯설어 하는 순수한 모습들) 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네모의 꿈에서 장장 3시간 동안 연애에 대한 얘기만 하다가 또 사랑이 등장하는 영화를 보려니... 마음이 시큰 :)
이래서 겨울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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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명진 2007.12.04 09:19 ADDR 수정/삭제 답글

    아!!이거 땡기는데요.이거 볼라다가 조지클루니 아저씨 나오는거 봤는데 졸았습니다.헐

    • Favicon of https://allycho.tistory.com BlogIcon 2007.12.04 13:22 신고 수정/삭제

      너무 기대는 하지 말고 보세요! :)

나에게 에너지버스와 같은 노래.

요즘 꽂혀서 계속 듣고 있는 노래이다. 이것도 아주 예전 노래라고 한다 :)

예전 노래들이 지금의 나에게도 좋다는 것은, 정말 좋은 노래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가사가 마음에 와닿는다.

"누구나 조금씩은 틀려. 완벽한 사람은 없어" 이 부분은 나에게 기운을 준다. 모두에게도 기운이 됐음 하는 바람으로 올려본다.

[##_Jukebox|ek010000000005.mp3|비밀의화원_이상은.mp3|autoplay=1 visible=1|_##]


바람을 타고 날아오르는 새들은 걱정없이
아름다운 태양 속으로 음표가 되어 나네
향기나는 연필로 쓴 일기처럼 숨겨두었던 마음
기댈 수 있는 어깨가 있어 비가와도 젖지 않아

어제의 일들은 잊어 누구나 조금씩은 틀려
완벽한 사람은 없어 실수 투성이 외로운 나를 봐

난 다시 꿈을 꾸게 되었어 그대를 만나고부터
그대 나의 초라한 마음을 받아준 순간부터 라라라라

하루하루 조금씩 나아질거야 그대가 지켜보니
힘을 내야지 행복해져야지 뒷뜰에 핀 꽃들처럼
점심을 함께 먹어야지 새로 연 그 가게에서
새 샴푸를 사러 가야지 아침 하늘 빛의 민트향이면 어떨까

난 다시 꿈을 꾸게 되었어 그대를 만나고부터
그대 나의 초라한 마음을 받아준 순간부터 라라라라

월요일에도 화요일도 봄에도 겨울에도 해가 질 무렵에도
비둘기를 안은 아이같이 행복해줘 나를 위해서

난 다시 꿈을 꾸게 되었어 그대를 만나고부터
그대 나의 초라한 마음을 받아준 순간부터
난 다시 꿈을 꾸게 되었어 그대를 만나고부터
그대 나의 초라한 마음을 받아준 순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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